토정 이지함선생 묘를 보다
토정 이지함선생 묘를 보다
강원 동해바다는 역동적이며 남성적인 향기가 풍긴다.
반면 서해안은 온유한 어머님 품 같은 평안함을 느낄 수 있다.
충남 보령시에 있는 큰 형님 댁을 찾아서 며칠간 쉬면서 여기저기를 돌아본다
오늘은 이지함 선생묘에 갔다.
충남 보령시 주교면 산27-3번지에 있는 이지함 선생의 묘를 방문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고 나지막한 산허리에 한산이씨 조상묘가 모여 있다
보령시에서 제작된 안내판에는 이지함 선생에 대하여 다음과 씌여있다.
조선중기(1517~1578)학자이며 기인(奇人)으로 이름난 명현(名賢) 이지함(李之菡) 선생의 묘이다.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호는 토정(土亭)이다.
고려 말 충신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6대 손이고 수원판관 치(穉)의 아들이다.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 지번(之番)에게서 글을 배우고 화담 서경덕(徐敬㯖)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천문(天文), 지리(地理), 의학(醫學)등에 능하였으며, 토정비결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벼슬하기 전 한 때 마포강변의 흙집위에 정자를 짓고 살면서
스스로 호를 토정(土亭)이라 하였고, 어염상고(魚鹽商賈)로 많은 곡식을 마련하여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평생 벼슬을 사양하다가 1573년(선조6년)도덕과 학문이 뛰어난 선비로 추천되어 포천현감이 되어서는 백성의가난하결을 위한 경제적 방안을 상소하였고,
임진강 범람을 예견하여 수많은 인명을 구제하였다. 1576년 아산현감 재직 시 걸인청(乞人聽)을 지어 빈민을 구제하는 데 힘쓰다가 1578년(선조11)
재임중 서거하였다.
우리나라 실학(實學)의 효시(曉矢)로 알려지기도 한 토정선생은 1628년(인조6년) 화암서원(花巖書院)에 주벽(主壁)으로 배향(配享)되었고,
화암서원은 1686년(숙종12)에 사액되었다.
1713년(숙종39)명현(名賢)으로 이조판서에 추종되었으며 , 1761년(영조37)에 문강공의 시호(諡號)를 받았다.
고한에 위치한 묘역은 선생과 그의 형제와 존 비속의 14기 묘소가 위치하고 있는데, 선생의 학문과 전해지는 여러 일화로 인하여 명당자리로 인식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토정비결』의 저자인 이지함(1517~1578)선생!
이지함 선생 및 그의형제와 존.비속 묘
이지함 선생 시비
이지함 선생의 묘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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